셔틀외교

셔틀외교는 원래 ‘제3국이 대립하는 양국을 오가며 벌이는 외교’를 일컬었습니다. 이것이 한일관계에서는 ‘양국이 상대국을 오가며 벌이는 외교’의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한일셔틀외교의 역사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1년에 한 번씩 상대국을 방문하기로 합의합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전범들의 위패가 보관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셔틀외교는 1년 만에 중단됩니다.

이어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한일관계 정상화’를 내세우며 2008년 셔틀외교를 복원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 12월 교토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을 끝으로 셔틀외교는 중단됐습니다. 당시 이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결단을 촉구하고,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면서 양국의 갈등이 고조됐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 때는 한일정상회담이 3번 이뤄졌으나, 모두 제3국에서 진행돼 셔틀외교로 불리진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한일관계

문재인 정부 때는 한일정상회담이 6번 열렸습니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배상 책임을 묻자, 이에 반발한 일본이 이듬해 한국으로의 소재·부품·장비 수출을 제한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정치적 이유로 경제 도발을 단행하지 않는다’는 자유무역의 원칙을 무너뜨린 조치라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을 제소했습니다. 더불어 일본과 군사정보를 직접 공유하기 위해 맺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도 연장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 일본이 수출규제를 재검토하기로 하자, 한국은 WTO 제소 절차를 중지하고, 지소미아 종료 시점을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두 정상은 총 84분간 회담을 진행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기자회견문 전문은 여기). ‘양국 관계 정상화’를 기조로 삼은 이번 회담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지난 6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해법(제3자 변제안)에 기시다 총리가 “앞으로 조치가 실시될 것을 기대한다”고 화답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수출규제 조치 해제에 관해 논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은 WTO 제소를 철회했습니다.

3️⃣양국 경제계가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만들기로 합의했습니다.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가 각각 10억 원씩 조성해 공동과제를 연구하고 청년 교류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4️⃣북핵 등 안보 위협에 대응해 지소미아를 복원하고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한편 일본 언론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언급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대통령실은 두 문제 모두 논의된 바 없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과 박진 외교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상회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해당 보도가 사실인 듯한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윤석열 정부의 적극적인 ‘구애’로 성사된 만큼, 일본이 이득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수출규제 조치 해제를 이번 회담의 성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일본에 남는 장사였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한국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으며, 오히려 규제를 풀기를 바란 건 일본이었다는 겁니다. 한국은 소재·부품·장비의 대일 수입의존도를 낮추며 피해를 줄여왔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경제 도발 조치가 한국이 아닌 일본에만 타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 해법을 내놓은 뒤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이 있을 것이라 강조했지만, 이번 회담에서도 일본 정부는 ‘과거사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만 고수했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원한 일본의 사과는 이번에도 나오지 않은 겁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일본은 이번 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일본 국민 3명 중 2명은 이번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한국 내 여론은 좋지 않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대다수의 국민은 이번 회담이 ‘굴종외교’, ‘조공외교’였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전문가들 역시 이번 회담이 ‘준 만큼 받는다’는 외교의 기본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합니다. 특히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해법이 나와야 진정한 한일관계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에디터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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