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스토리
여성안심귀갓길이 문제인 진짜 이유에 달아주신 천인혁 님의 댓글을 보고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곱씹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세계관’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세계관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관련된 마케팅 콘텐츠들은 세계관 마케팅이 브랜드 가치를 더 쉽게 전달하고, 소비자를 팬으로 만들며, ‘과몰입’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세계관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세계에 대한 설정을 말합니다. 현실에 없는 특정한 요소와 규칙들이 있고, 소비자는 이를 따라가며 세계관을 학습하는 것에 재미를 느낍니다. 창작물부터 케이팝, 최근에는 일반 상업 광고까지 세계관 설정에 열심입니다.
그러나 세계관 마케팅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설정이 복잡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세계관의 경우 소비자가 피로를 느껴 떠나간다는 겁니다.
이렇게 살펴보니, 세계관 마케팅의 원조는 정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는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한 관점에서 출발하기도 하지만,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데 열심이기도 합니다. 그 세계관에 ‘과몰입’한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이들이 만족할 만한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마케팅에서의 세계관과 차이가 있다면 정치는 가상의 세계를 현실이라 주장하고, 때로는 진짜 현실로 만들기도 한다는 겁니다.
여성안심귀갓길 폐지를 추진한 관악구 최인호 구의원의 세계관에선 그의 주장이 ‘검증된 사실’일 수도 있고, ‘검증된 사실’로서 그의 팬들에게 제공되는 콘텐츠일 수도 있겠습니다.
세계관이 명료한 정치일수록 팬덤은 강해집니다. 동시에 그 세계관에 납득할 수 없어 등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아집니다. 그럴 때 세계관 마케팅은 팬과 팬이 아닌 사람을 가르고 전자에 집중합니다. 100명의 팬을 10만원을 쓰는 1000명으로 늘리는 것보다, 100명의 팬이 각자 100만원씩을 쓰게 만드는 것이 더 쉽고 효과적이라고 여깁니다.
정치가 이런 선택을 하면 사회는 필연적으로 갈라질 겁니다. 과몰입 팬들을 위한 극단적인 발언, 포퓰리즘 정책이 쇄도할 겁니다. 슬프게도 지금 우리 정치는 이미 그런 모습인 듯 합니다.
정치는 세계관을 필요로 합니다. 신념과 관점이 없는 정치는 공허하고 무기력할 겁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정치는, 세계관에 입각한 정치가 아닌 세계관 마케팅의 정치입니다. 둘의 차이를 결정짓는 분기점은 어디일까요.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세계관 마케팅이 만든 가상의 세계인지, 현실 세계를 바라보는 틀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해묵은 세계관의 재부상에 새삼 흔들리는 정치권을 보니 고민이 깊어짚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