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과 정치’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키워드는 팬덤 정치인데요. 팬덤 정치의 특성은 무엇이고, 왜 문제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착한 팬덤이 있고 나쁜 팬덤이 있다고 생각해요. 착한 팬덤이 비판적 지지자라면, 나쁜 팬덤은 축구의 훌리건 같은 거죠. 나쁜 팬덤은 바이러스 같아요. 좋아하는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그 정치인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에 더 열과 성을 쏟죠. 바이러스의 목적은 혐오를 확산시켜서 정치인들을 숙주로 만들고 그들이 말을 하지 못 하게 만드는 거예요. 검찰 개혁이 이슈일 때 비공개 의총에서 몇몇 의원들은 "나는 반대하고 싶은데 문자 폭탄 무서워서 말을 어떻게 하겠냐"고 발언하셨어요. 소신 있게 말하지 못 하는 정치인도 문제지만, 조직적으로 문자 폭탄을 보내는 팬덤의 문제도 있죠. 결국 당론 결과는 만장일치로 나왔어요. 누구도 책임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모두를 책임자로 만드는 무책임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냈죠. 여기 팬덤도 연관돼있다고 봐요.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신 것에 대해 ‘내부 총질’이라는 표현도 나왔는데요. ‘전략적으로 생각해서 상황에 따라 비판을 자제해야 된다’는 지적도 있었고요. 그동안 여의도의 문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오셨는지 궁금해요.
저한테 비대위원장을 맡긴 건 앞으로 반성을 통해 지방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의도였을 거예요. 지방선거 유세 현장을 다니면서 시민 분들을 만났는데, ’180석을 줬는데 2년 동안 뭐 했냐? 뭘 잘했다고 우리가 또 표를 주냐?’고 많이들 말씀하셨어요. 면목이 없었죠. 제가 생각해도 그동안 180석으로 뭐 했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사과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 약속을 지키고 변화하는 민주당이 되겠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그런 것들이 결국 다 내부 총질로 비춰졌죠.
당 내에서 세 번의 광역단체장 성범죄 사건이 있었잖아요. 셋 다 단호하게 처리하지 못 했어요.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선거라는 대의 앞에서 피해자에게 조금 기다리라고 할 수 없나?”라는 분위기가 통용되는 것을 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죠. 정치의 본질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 우선이 아닌 ‘당선’이 우선이 돼버린 거예요.
저는 국민의 상식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제 상식이 다 옳다고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제가 살아왔던 짧은 인생 동안 상식이라 믿어온 것들을 말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 걸 보면서 답답했죠. 당 내 인물들이나 지지자들에겐 제가 이상한 존재로 느껴진 같아요.
국민의힘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내몰리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드셨을 것 같아요. 이 전 대표도 여의도 문법을 지키지 않다가 결국 완전히 내쳐지는 상황을 겪었잖아요.
저와 이준석 전 대표의 공통점을 굳이 얘기하자면 들이받았다는 것? 그 정도인 것 같은데요. 기존의 청년 정치는 대부분 기득권 정치인들이 청년들을 자기 줄로 삼거나 ‘말 잘 들으면 나중에 내가 한 자리 줄 수도 있고’ 이 정도였던 거예요.
국민들이 원하는 의제에 대해 기성 정치인들이 노력을 안 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청년 정치나 다당제의 필요성도 더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얘기했던 거고요. 이준석 전 대표도 새로운 도전들을 많이 했잖아요. 지난 지방선거에 시험을 도입한 것처럼요. 그가 가는 길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도전 정신에 대해서는 높게 사요.
국민들의 여론을 봤을 때 세대 교체의 필요성을 느끼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당장은 아니라도 이준석 전 대표가 재기할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과하는 것만으로 선거를 이길 수 없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반성이라는 반석을 튼튼하게 한 다음에 비전을 얘기할 수 있어요. 선거에서 비전만 얘기하는 건 이전에도 민주당이 계속해왔던 방식이었거든요. 차별금지법도 사실 15년이 지난 민주당이 지키지 않은 큰 약속이죠. 갑자기 ‘앞으로 뭐 잘하겠습니다’ 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과연 이 말을 믿으실까 싶어요. 지방선거에서 우리 당의 전략은 쇄신론이 아닌 견제론이었어요. ‘허니문 선거’에서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자는 거죠. 저는 견제론보다 쇄신론이 맞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이고 그 점에서 제 생각과 당의 생각이 좀 달랐죠.
지금까지 해주신 얘기를 꿰뚫는 키워드가 있다면 ‘당심과 민심의 괴리’인 것 같아요. 여의도 정치인이나 민주당이 여의도 밖, 민주당 밖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당대표에 출마한다고 하자, 국민 여론조사 지지율이 9% 가까이 나왔어요. 약 10명 중에서 3위였는데, 당원 조사는 거의 꼴찌였죠. 제 지지도 뿐만 아니라, 일명 ‘검수완박’ 강행 당시에도 당원들은 찬성률이 굉장히 높았지만 국민 여론조사는 좋지 않았어요. 검찰 개혁은 우리가 당연히 해결해야 할 아젠다지만, 이 시기에 이렇게 강행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하시는 분들이 더 많았던 거예요. 이 부분에 있어서 분명히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있다고 느꼈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아야 선거에 이길 수 있는데, 민주당 적극 지지자들의 의견만 듣다 보니까 외연을 확장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의도 바깥의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야 된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인데 그게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정말 여의도라는 섬에 갇혀서 그들의 이야기들만, 그들이 대변하고 싶은 사람들만 대변하게 되는 그런 악순환의 구조를 이루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 컸어요.
계속 민주당 안에서 이 일을 해나가려고 하시는 이유에 대해 묻고 싶어요. 다른 당으로 갈 수도 있고 창당을 하는 선택지도 생각해보셨을 것 같은데. 앞에서 다당제를 말씀해주셨기도 하고요.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에요.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왜 이렇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민주당에 버티고 있냐’고 하시고, 싫어하시는 분들은 ‘그만 내부 총질하고 나가라’ 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민주당은 민주화를 이룬 정당이고, 계속해서 서민과 중산층 옆에서 아픈 목소리를 들어온 정당이에요. 그 당이 지금 길을 잃고 헤매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또 당적을 바꾸기에는 제가 있었던 기간이 너무 짧으니, 일단은 조금 더 있어보겠다는 거죠. 또 결국에 다당제를 이루는 것도 권력이 있는 이 양당 안에 있어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