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 세계은행 우즈베키스탄 대표, 통일연구소 소장… 다양한 경력을 거쳐 정치인이 되셨는데요. 정치인이 되기 전엔 정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정치판에 직접 뛰어들어보니 그 생각이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도요.
정치가 대충 이럴 줄 알았어요. 제가 정치학을 전공하지 않아서요. 대학 졸업하고 바로 정치에 뛰어든 것도 아니고 20여년 이상의 거친 국제 생활을 하고 왔어요. 학문으로서의 정치에 접근한 게 아니라 직업으로서의, 현장에서의 정치에 접근하게 됐죠. 국제기구에 있으면서 소위 국제 개발이라는 것이 정치를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거기서도 매우 정치적인 경제 활동을 했기 때문에 크게 다르게 느껴지진 않는데요. 그래도 제가 정치를 하기 위해 준비됐다고 생각한 부분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준비가 안 됐다고 느낀 부분이 생각보다 괜찮을 때도 있고요.
제가 정치인을 꽤 많이 알아요. 국제 활동을 할 때도 미국, 유럽 국회를 많이 다녔으니까요. 그런데도 완전히 간과한 게 있어요. 정치인하고 연예인이 결이 비슷하다는 거예요. 정치를 하려면 인지도가 있어야 해요. 제가 정치인으로서 발언을 해서 ‘조정훈, 뭐라고 했다’고 뉴스가 나가면 이제 댓글에서 ‘조정훈 누구? 듣보잡’ 이런 댓글이 달려요. 그러면 마상(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입는 거죠. 제가 이 부분을 잘 몰랐어요. 저희 보좌진들이 맨날 끙끙 앓던 게 인지도 높이기에요. 그래서 ‘염색을 하세요’, ‘안경을 바꾸세요’, ‘개그프로에 나가야 됩니다’, ‘망가지셔야 됩니다’ 여러 의견이 나와요.
제가 생각보다 잘 버티는 건 욕받이 기능을 하는 거예요. 정치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욕을 먹는 거예요. 국민 욕받이죠. 세계은행은 욕 먹는 직장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태어나서 참 많은 욕을, 자랄 때도 먹지 않았던 욕을 정치인이 되고 나서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네요.
정치에 진출하시기 이전에 커리어를 잘 쌓아오고 계셨는데, 왜 같은 분야 안에서 커리어를 지속하시지 않고 정치에 뛰어드셨나요?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제가 굉장히 공부를 안 하고 못하는 학생이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반에서 40등 정도를 했었어요. 저희 때는 한 반이 60, 70명이었거든요. 공부를 참 안 좋아하고, 야구 경기 보러 다니고 라디오에서 야구 중계 듣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옆에는 항상 헌법 책이 있었어요. 헌법을 참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이후에 상과대학을 가고 공인회계사를 하면서도 정치학 수업은 하나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세계은행에서 일하며 이제 국가라는 단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 제가 경영학을 참 재미없어 하고 힘겨워한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어요. 돌이켜보니 저의 사고의 단위는 개인, 회사가 아닌 국가였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이런 성향을 잘 모르잖아요. 근데 경영학과를 다니면서도 경영학의 기본 가정에 동의가 안 되더라고요. ‘모든 회사가 이윤을 극대화하면 사회가 제일 좋아진다’ 이런 거요. 그게 말이 되나요, 우리나라에서?
세계은행은 그래서 저한테 아주 좋은 직장이었어요. 30대 초반에 여러 나라에 파견돼서 그 나라 최고 정책을 하는 장관들 총리들과 그야말로 맞장 뜨면서 배우고 토론할 수 있었거든요. 세계은행 돈이 없으면 IMF 같은 위기 상황에서 나라가 부도가 나요. 그래도 돈을 그냥 줄 수는 없으니까 인플레이션, 교육을 어떻게 하라고 나라들에 온갖 오지랖을 다 떨었죠. 그러면서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는가에 대한 경험치도 쌓고, 여러 실험을 해봤어요. 그래서 정치가 원래 하던 일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처음부터 정치를 통해서 뭔가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건 전혀 아니고, 세계은행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정치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정치에 뛰어들길 결심하신 걸까요?
솔직히 그것도 아니에요. 저는 영웅 서사를 되게 싫어해서요. 사람들이 저한테 다음 리더라고도 하는데, 사람 믿지 마세요. 정치에서 아주 유명한 격언이 있어요. ‘사람을 믿지 말고 상황을 믿으라’. 사람 속마음을 어떻게 알겠어요, 나도 모르는데.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다 보니 제 아내가 향수병에 걸렸어요. 그래서 무조건 한국을 가기로 했어요. 제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건 행정 공무원 아니면 정책 관련된 일이었는데요. 우연히 정치권에서 연락이 와서 정치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어요. 정말 우연히 하게 됐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이전부터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으니까 그 콜에 제가 응답했죠. 그렇게 정치를 시작했고, 딱 15년 할 생각이에요. 지금 한 4년 해왔는데, 11년 뒤에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갈 예정이에요.
그렇다면 다음 총선에도 출마할 계획이신 건가요?
그렇죠. 조정훈의 정치는 이제 시작한 거니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제가 11년 동안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정치라는 업을 제 직업으로 정했으니까, 누가 저를 정치인이라고 부르든 안 부르든 그 일을 계속 하겠다는 거예요.
2016년에 제가 아주대에서 3년 반 정도 통일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는데요. 저는 한국에서 정치하려면 기본적으로 두 가지는 머릿속에 정리된 사람이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답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답. 제가 먹고 사는 문제는 그래도 한두 마디 할 수 있을 텐데, 한반도 문제에 대한 답이 없어서 그렇게 일했는데요. 버릇은 못 속인다고, 소장으로 있으면서도 북한 미사일 문제보다 저출산 문제, 양극화 문제와 관련된 교수들만 찾아다녔어요. 그랬더니 저한테 ‘소장님 관심이 되게 넓으시네요’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게 불편했어요. 제가 관심 가질 필요도 없는데 왜 이런 데 관심을 가지냐고 하시는 게요. 국회의원이 되고 좋은 점 하나는 이런 거 질문한다고 욕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정치인이니까 당연히 관심을 갖고 있어야죠.
시대전환이라는 당을 창당해 이끌어오셨는데요. 시대전환이라는 당이 어떤 점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독자들한테 한번 자랑해주신다면?
크게 자랑할 건 없는데요. 그래도 하루에 50명에서 100명씩,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입당하고 있는 당이라는 거? 한국에서 당을 만들고 이어나가려면 돈이 많거나 슈퍼스타가 있어야 해요. 정몽준 전 현대그룹 회장이 당을 만들 때 80억 정도를 썼고, 안철수도 한 50~60억을 기본으로 썼어요. 저는 총 재산이 그렇게 안 돼요. 슈퍼스타도 아니고요. 그런데도 당이 만들어졌어요.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시대의 흐름에 맞는 방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시대전환은 3040이 80% 정도 되는 정당, 도시의 젊은이들, 직업인들이 모이는 정당이에요. 20대도 포함하고 싶은데 반응을 잘 안해주시더라고요. (웃음) 빌라촌, 연립 주택가에 어떻게 하면 주차장을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곳이에요. 정치를 싸움이 아닌 문제 풀이로 보고 싶게 하는 정당.
제가 진보도 보수도 아니라는 얘기를 많이 한 건 아실 거예요. 세계은행 다닐 때 저한테 그런 질문 한 사람이 없어요. 제가 우즈베키스탄 사무소 대표로 가겠다고 하면 면접을 보는데, 그런 걸 물어보지 않아요. 우즈베키스탄은 지금 물 문제가 심각한데 어떻게 풀겠느냐, 이런 걸 물어봐요. 그래서 제 안에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DNA가 있어죠. 정치의 본질도 문제 풀이라고 생각해요.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해요.
근데 한국에 오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진보냐, 보수냐 이념을 따져요. 아까도 기자들을 만나고 왔는데, 누구랑 밥을 먹었냐고 해서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랑 먹고 왔다고 하니까 당이 다른데 그럴 수 있냐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먹어요. 같은 사람인데 못할 게 뭐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시대전환이 새로운 인물, 새로운 방식, 새로운 생각의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조금 기대해 볼 수 있는 작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