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전보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구분이 좀 더 흐려지고 협력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보시나요?
잘 모르겠어요. 이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21세기는 보수의 세기가 될 거다 이런 말도 많이 하는데요. 거대 기업들이 온라인·오프라인 시장을 모두 장악하게 되면, 진보 진영의 해답은 말 그대로 세금 많이 걷어서 나눠주자는 건데요. 물론 그게 어느 정도는 필요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국가에 대한 예속이 심해져요. 보수의 관점은 이 예속을 최소화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앞으로의 보수 정치가 그 과정에서 진보 진영과 협력할 부분도 있겠죠. 예를 들면 불평등 완화에서요. 하지만 기본적인 지향점은 달라요. 보수는 기본적으로 유토피아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정치, 직접 해보시면서 실망하신 점은 없나요?
우리가 양대 정당에 뭔가 거창한 게 있을 거라고 기대를 하잖아요? 수면 위는 사람들이 서로 욕하고 싸우는 난장판일지라도, 수면 아래에서는 정책적인 기능이라든지 어떤 싱크탱크, 전략가들이 일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특히 저희 국민의힘 같은 경우는 한 15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집권 세력인데, 뭔가 더 거창한 게 있겠지 생각하세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없어요. 이렇게 정치의 민낯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들어요. 이거 이래서 되는 건가, 나라가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고,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나도 잘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해요.
정치의 민낯이라는 게 어떤 걸까요?
정치인들끼리 티격태격하면서 싸울 때 언론에서 많은 해석을 붙이잖아요. 이런저런 전략적인 이유로 각을 세우는 거다. 그런데 그냥 싫어서 싸울 때가 많아요. 전략적으로 할 때도 있지만 그냥 보이는 게 다일 때도 많아요. 그리고 저희 당이든 민주당이든 여의도연구원이나 민주연구원이나 이런 데 기능들이 예전만 못해요. 미래를 위한 발전기가 물밑에서 제대로 돌아가지 못해요. 분업도 안 돼 있어요. 의원들이 오히려 저한테 물어보는 경우도 있어요. ‘이거 어떻게 굴러가는 거냐’ 하고요. 그럼 저는 ’이건 의원님이 아셔야지 왜 저한테 그러세요’라고 하거든요. 또 권력자의 말 한마디를 해석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써요. 그러다 보니 민생이나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우리 기대에 못 미칠 때가 많죠. 반대로 열심히 하는 것도 많아요. 정치인들 되게 바쁘게 살아요. 지역 행사 다니랴, 민원 해결하랴. 열심히 사는 건 맞아요.
호남에서 지역 정치의 민낯도 목격하셨을 것 같은데요. 특정 지역의 지지, 권력을 한 당이 독점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있나요?
민주당이 호남에선 기득권 구태 중의 구태죠. 지역 유지들과 지역 정치인들의 유착이 굉장히 강합니다. 중앙보다 스케일이 작기 때문에 언론들의 감시 기능도 약하고요. 지역 언론도 민주당 친화적입니다. 행정부, 지방 의회죠, 언론, 시민사회단체, 사업가가 하나의 거대한 이권 카르텔로 묶여 있어요. 순천에서 저한테 행정소송 의뢰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랑 소송하면 오히려 제가 열심히 할 것 같다고 찾아오세요. 지역 변호사들도 민주당과 다 연줄이 어느 정도 있는 분들이 많거든요. 지역 유지 세력을 상대로 고소 고발을 할 때도 이 사람이 민주당에 연줄이 있다면서 저한테 해 달라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이 거대한 카르텔이 지방 정치를 굉장히 혼탁하고 부패하게 해요. 그러다보니 민주당 출신의 젊고 유망한 정치인들도 호남에 가서 정치하려 하지 않아요. 그만큼 혼탁한거죠. 민주당 입장에서도 호남에서 경쟁력 있는 인물을 발굴할 필요도 없어요. 경쟁이 없으니까요. 비슷한 비판을 경북의 국민의힘에도 할 수 있어요. 그래도 경북의 민주당이 저희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죠.
정말 화가 나는 건 이것 때문에 비수도권 정치가 수도권 정치를 이길 수가 없다는 거예요. 수도권이 돈도, 인구도 더 많고 모든 화제의 중심이 수도권인데 비수도권 정치가 어떻게 이깁니까. 이런 상황에서 유망한 신인 정치인들은 기회가 열려 있는 기회의 땅 수도권에서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이준석 전 대표 고향이 대구지만, 대구 가서 정치합니까? 공천도 안 줘요. 영호남의 일당 독점 체제가 유능한 사람들의 도전을 막고 지방 정치인들의 수준을 떨어트리는 거예요. 지역 균형 발전도 멀어지고요. 안그래도 적은 비수도권의 정치력이 동서로 갈려져 있으니 수도권에 상대가 안 되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대결 구도로 끌고 가려는 건 아니지만, 대등한 정치력이 부딪히는 상황이 아니에요.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고요.
’연고가 있는 지역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 그 지역의 필요를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많이들 말하잖아요. 그걸 반박해 주신 게 재밌었거든요. 오히려 외지인이기에 더 잘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요.
그럼요. (연고가 있는 지역에선) 매너리즘에 빠지는 면이 있어요. 저는 연고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호남이 사람 가려 받을 처지가 아니에요. 인구 측면에서도 오겠다는 사람 다 받아야 되는 상황이고, 정치의 측면에서도 유능한 사람이면 와서 자기 비전을 발표해 보라고 하는 게 무조건 이득입니다. 수도권에서 정치인 뽑을 때 고향이 어디인지 따지지 않잖아요. 유능한 사람이면 뽑아서 쓰면 되는 거잖아요. 비수도권도 그런 마인드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치적 인재 풀을 스스로 줄일 필요가 없어요. 우리 지역을 발전시킬 만한 비전이 있으면 무조건 오라고 해야죠.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 청년 정치인들의 진입 장벽 모두 정치 시스템 개혁이 필요한 문제잖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의 변화를 생각하고 계신가요?
착각하면 안 되는 게, 어느 나라든 정치에 뛰어드는 게 쉬운 곳은 없습니다. 저는 청년이 정치권에 무조건 더 많이 들어오게 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봐요. 꽃가마 태워주는 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요. 시대 변화에 조금 더 민감하고 새로운 담론들을 제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청년이 유리한 면이 있는 건 사실이죠. 결국 그 능력을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아야 돼요.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는 게 중요합니다. 각 지역의 토호 세력들이 정치권을 꽉 잡고 새로운 도전자의 진입을 가로막는 시스템은 당연히 깨져야 하죠. 하지만 정치에 입문하고 도전해서 승부를 보는 건 원래 어려운 일이에요.
일부 시스템의 개혁은 필요합니다. 저는 해당 선거 1년 전에 영입을 끝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으실 수도 있지만, 결국 신데렐라들은 막판에 들어오거든요. 이들은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아서 들어오지 않아요. 당시에 공천하는 당 대표나 공천관리위원장의 영향으로 갑작스럽게 막 들어오거든요. 스펙이나 스토리가 좋거나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청년들이 의지가 꺾이는 거예요. 내가 정치적인 활동으로 인정받는 것보다 윗사람한테 잘 보여서 빨리 꽂히길 원하게 되죠. 그걸 원하는 순간 청년 정치는 청년 정치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수혜를 청년 정치인에게 주는 사례가 많지 않나요?
있죠. 사실 이준석 전 대표가 처음에 정치에 들어온 것도 그렇죠. 저도 어떻게 보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신진 정치인들도 내가 노력해봤자 소용 없고 그냥 줄 잘 서서 좋은 지역구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런 걸 없애야 됩니다. 그렇다고 인재를 영입하지 말자는 게 아니고요. 최소한 해당 선거 1년 전에 사람을 뽑아서 정치 활동도 해보고, 당원도 모아보고, 당원들과 토론도 해보고, 이런저런 위원회 활동도 해보고, 선거 교육도 받아보게 하자는 거죠. 이 당의 정체성과 내가 맞는지, 내가 평생 직업 정치인으로 살 각오가 됐는지, 이런 것들을 나름대로 검증하고 나서 공천해야 해요. 공천 며칠 전에 갑자기 영입하니까 정치의 진정성을 가지고 투신하려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거죠. 누가 나를 영입해 줄 때까지 팔짱 끼고 기다리거나 줄만 잡으려고 해요. 그건 정치 활동이 아니에요. 도전자들이 언제든지 들어와서 제대로 활동하면 승부를 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게 중요해요.
단순히 기회의 공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을 넘어서 결과적으로 질 좋은 정치인들을 많이 생산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걸까요?
그럼요. 제가 지난번에 공천 심사를 하면서 제일 놀랐던 게, 공천 신청자를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요. 자기소개서, 재산 관련 자료, 직무 수행 계획서 이런 것들은 있지만 객관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뭘 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어요. 그냥 구글링 해서 보는 거예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저도 구글링조차 못 해요. 여론조사 결과가 있으면 그걸 보면서 걸러내는 거고.
그래서 지금 혁신위 안에서 인재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다루고 있어요. 일반 사기업들도 하는 건데요, 인재 데이터베이스에 출마 희망자가 자기 활동을 기록할 수 있어야 해요. 선거 들어가기 전 일부 기간에 데이터베이스를 오픈해서 후보자들끼리 상호 검증도 할 수 있게 하고요. 상호 검증을 통과한 건 공천 자료로도 쓸 수 있어야 돼요. 지금은 어떤 정치인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알 수가 없어요. 자기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걸 그대로 믿을 수는 없잖아요. 객관적인 평가 자료 없이 공천관리위원회가 갖다 꽂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이런 것들을 좀 없애야지 유능한 사람들이 공정한 평가를 받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뛰어들어올 거 아니에요. 연줄도 없는데 공정한 평가를 받을 기회까지 없다고 생각하면 누가 여기 들어와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