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정치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신 건 아닌가봐요. 정치인이 되기 전엔 정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나요?
원래 청소년기 때부터 사회 활동이나 캠페인을 많이 했고, 그것의 연장선에서 국제기구 같은 곳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 활동의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려면 필연적으로 그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과 협력할 기회가 생겨요. 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고요. 그렇게 간접적으로 정치인의 일을 접하며 이 사람들의 일과 권한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어요. 근데 그런 호기심을 압도하는 피로감이 더 컸어요. 당시에는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았고, 어떤 성향으로 내가 규정되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런 프레임 안에 저를 가둬 두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어서요. ‘어느 쪽도 아닌 나’로 보여졌으면 해서 어떤 정치적 성향이나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어요. 또래들처럼 적당한 거리 두기를 했죠. 막연히 호기심은 있지만 내가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정치는) 권력 투쟁의 성격이 더 강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이 땅의 어떤 불평등과 빈곤을 없애는 일이고, 그럼 난 국제기구 같은 신성한(웃음) 일을 해야지, 정치 같은 권력 투쟁은 나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생각이 좀 나중에 어떻게 바뀌셨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어떤 의제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그걸 굳이 정치적 성향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말씀이신 거죠? 그러다 어떤 계기로 보좌진, 대변인으로까지도 일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아까 국제기구에 가고 싶었다고 말씀드렸는데, 특히 세계은행이랑 OECD에 관심을 뒀어요. 제가 같이 일했던 조정훈 국회의원이 세계은행의 몇 안 되는 한국인 고위직이셨어요. 국회에 가서 일해보고 싶은 게 아니라 정훈 님이랑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보좌진에 지원했어요. 개인적인 커리어 조언도 구하고, ‘적당히 몇 달 일하다가 그다음 단계를 밟아야지’ 그런 마음이었죠.
’조정훈 의원님’이라고 하지 않고 님이라고 하시네요?
맞아요. ‘의원님’은 놀릴 때 써요 (웃음).
정훈 님이 21대 국회에서 신선한 키워드를 많이 던지시는데, 본인을 ‘입법 노동자’라고 생각해 달라고 말씀하신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정훈 님 아이디어였나요?
큰 틀에서 제시한 건 당연히 정훈 님이었어요. 의원실이 의원의 행보나 정책 활동, 의정 활동을 같이 기획하긴 하지만, 큰 방향이나 색깔은 의원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못 만들거든요. 근데 그런 걸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셨어요. 그 내용을 채우는 건 보좌진이 같이 했지만, 방향성은 정훈 님의 제안이었어요. 저도 아주 신선한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오래 정치를 한 사람이거나 거대 정당이라면 못했을 시도 같은데, 세계은행이라는 국제 규범에 맞는 그런 조직에서 일하면서 그 문화를 주입시킨 거죠. 어떻게 보면 새로운 표준을 도입하신 거라 화제가 됐어요. 그런 정훈 님의 제안에 보좌진으로서 존중받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을 하는 건데 이렇게 칭찬 받을 건가’ 싶기도 했어요. 스타트업 같은 데서는 ‘님’이라고 부른다고 칭찬하지 않잖아요. 근데 ‘정훈 님’ 그걸로 몇 달 동안 칭찬받고, 각종 언론에서 인터뷰를 했어요. 굉장히 좋은 파트너, 보스를 만났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국회의 문화가 굉장히 후진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조직에 대한 정훈 님의 비전과 그 안에서의 경험이 소희 님께 긍정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시대전환이라고 하는 당의 방향성은 어떻게 생각됐나요? 소희 님 개인의 관심 분야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대변인 자리를 제안받을 때까지 당적이 없었어요. 대변인을 하려면 당연히 가입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인생 첫 정당 가입을 앞두고 천천히 돌이켜본 거죠. 단지 이게 재밌어 보여서 하는 건가? 아니면 정말 나랑 결이 맞다고 생각하는 건가? 저는 양당제의 폐단에 대해 문제 의식이 많았던 사람이에요. 현실 정치를 하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요. 둘 다 소모되는 방식으로 갈등하는 가운데 그 사람들이 전혀 대변해주지 못하는 의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대전환이라는 조직이 표방하는 것은 ‘생활인의 정당’, ‘일하는 정당’인데요. 상대적으로 그런 갈등 구조보다는 다음 챕터의 의제를 빨리 선점하고 제시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그런 일들을 했어요.
대표적인 게 기본소득과 주 4일제. 시대 전환이 거의 처음으로 던진 의제였어요. 재난 지원금도요.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들었어요. 기존의 문법에서 좀 더 자유로운 상황에서 진짜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정당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지향하는 바랑 잘 맞았고요. 지금은 당원이 아니지만, 거기서 정치 커리어를 시작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어요. 거대 정당에서 시작했으면 기존의 문법에 익숙해져서 새로운 의제를 파악하고 발굴하는 그런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양당제의 문제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해보지도 못했을 거고요.
대변인과 보좌진이 하는 일이 궁금해요. 소희 님의 블로그와 정훈 님의 말로는 ‘입법 노동 파트너’라고 표현됐는데, 간단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대변인은 어떤 정당을 대변하는 동시에 이 정당이 무엇에 관심과 시선을 두고 있고, 어떻게 나아갈 것이라고 말과 글로 계속 보여주는 직업이에요. 그래서 언어에 대한 책임을 많이 느꼈어요. 저 개인을 대변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정당이 지향하는 바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의 접점을 잘 찾아내려 했어요. 그걸 당의 특색에 맞게 조정해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의제나 존재를 호명하는 일을 한다고 봤어요.
제가 대변인 선임되기 전 시대전환의 논평은 주로 통일, 북한, 경제 관련 이슈 위주였는데요. 제가 대변인 한 뒤로 기후위기, 젠더, 혐오 범죄 등의 이슈 또한 시대전환이 관심을 갖고 있단 걸 많이 보여줬어요. 사람들이 당을 인식할 때 보통 당의 홈페이지나 SNS에서 어떤 글이 최근에 나왔는지 많이 보는데, 그게 저를 통해 가공돼서 나가는 거거든요. 그걸 보고 ‘이 당이 이런 문제에도 관심이 있고 내 얘기를 해주네’라는 피드백을 해줄 때 많은 효능감을 느꼈어요.
보좌진은 기획자에요. 의원은 플레이어, 선수고 그 판을 짜는 건 보좌진들이 같이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대정부 질문에서는 문장 하나하나, 어디서 강조를 하고 어떤 부분에서 치고 나가고 이런 것가지 다 같이 기획하고요. 그 기획을 플레이어가 잘 소화하고 퍼포먼스를 해내는 데서 이 일이 정점을 찍는데요. 정치의 영역에 없을 때는 마지막 결과물만 보이죠. 철저히 (의원) 개인의 역량에 의한 결과인 줄 알았어요. 사실 그 뒤에 팀과 기획자들이 있어요. 정훈 님이 왜 입법 노동 파트너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이건 파트너십의 구조고, 서로 역량을 끌어주고 신뢰하는 게 의원 개인의 퍼포먼스 역량과 매우 중요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좌진은 어떤 구체화된 정책이나 어떤 법의 형태를 만들잖아요. 그게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건지도 궁금해요.
흥미로운 경험을 들려드릴게요. 물론 저의 보좌진 경험은 굉장히 특수한 케이스긴 해요. 다른 300개 의원실 중 200곳은 굉장히 수직적인 구조라 저 같은 경험을 거의 못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 특수함을 감안하고 들어주세요.(웃음)
저희가 어떤 법안을 조정훈 의원실의 1호 법안으로 낼 것인가에 대한 토론과 제안을 했었거든요. 당시 정훈 님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와 제가 하고 싶은 일의 접점을 계속 찾았어요. 정훈 님은 플랫폼 노동자에 관심이 많으셨고, 저는 노동권,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벌어지는 양극화와 그로 인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제가 눈여겨본 건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 기록 삭제였어요. 이분들의 노동 기록이나 이력은 플랫폼 기업에 귀속돼서, 일을 그만두면 앱 상에서 삭제돼요. 자기가 일했던 기록이 한 순간에 다 날아가는 거예요. 그게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보완해 줄 수 있는 장치를 입법화하면 어떨까. 그 사람들의 경력과 사회적 기여에 대한 기록이 이직할 때 이전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이걸 정훈 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하셔서 저희 의원실 1호 법안으로 채택돼 실제로 법안이 나갔었어요.
그 과정은 어떻게 되냐면, 법률 제안서라는 게 있어요. 보좌진이 1차로 초안을 써요. 이걸 국회 내에 입법 정책처에서 법 형태로 가공을 해요. 그럼 저희가 최종 점검을 한 뒤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는 형태입니다.
사회 현상에 대한 관심, 무엇이 개선돼야 한다는 믿음과 의지가 필요하군요. 아이디어도 있어야 하고요.
더불어 법이라는 틀 안에서 이걸 어떻게 보호하거나 또는 발전시킬 수 있을지, 법과 제도의 공백을 계속 찾아내야 해요. 이슈는 계속 터지는데 법과 제도는 느리게 변하잖아요. 그래서 공백이 많이 생겨요. 이걸 찾아내서 어떻게 메울지 아이디어를 빠릿빠릿하게 내야 하고요. 또 사람들을 설득하고 모아야 해요. 의원 10명을 모아야 발의를 할 수 있거든요.
많은 일을 해야겠어요.
사실 입법 건수 채우려고 기존 법안에서 글자 하나만 바꾸고 이런 분들도 계세요. 근데 정훈 님은 그런 스타일은 아니세요.
그렇군요. 의원실과 법안이 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하나의 체계라고 본다면, 그게 잘 굴러가기 위해서 어떤 운영 방식이 필요할까요?
사람들이 의견 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리 높은 급수의 사람이 낸 아이디어일지라도 잘못된 방향이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마음껏 비판하고, 제대로 된 피드백 과정을 거쳐야 해요. 시대전환은 그런 거버넌스를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요. 빠른 시도가 가능하고요.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의 최대 수혜자는 보좌진이 아니라 정훈 님이라고 생각해요. 직급에 관계없이 자기가 제시한 프로젝트나 아이디어는 끝까지 리더가 돼서 끌고 가야 되거든요. 그 결과는 결국에 의원이 가져가니까 의원이 최대 수혜자죠. 의사결정권자는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가 나의 권한을 내려놓는 게 아니라 결국에 팀을 위한 거라고 봐야 해요. 정치에 그런 문화가 유입되면 좋지 않을까요?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제1의 원칙처럼 말해지잖아요.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가뿐만 아니라 개별 조직에서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그런데, 정치를 직접 해보니 어떠셨나요? 재밌으셨나요?
저는 효능감을 진짜 많이 느꼈어요. 또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또래에 비해 제 언어를 펼칠 공간이나 무대를 많이 부여받은 편이라서요. 그래서 그런 제가 제안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정책, 프로젝트나 제가 쓴 논평이 사람들에게서 호응을 얻을 때, 특히 그 논평이 가리키는 이슈의 당사자나 대변하고자 한 사람이 ‘이런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할 때 효능감이 들어요. 그게 아주 미미한 영향일지라도 우리의 이야기를 그 공간에서 전해줘서 고맙다, 힘이 된다는 의견을 받을 때요.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의원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어요. 예를 들어 정훈 님과 제가 시민 백서라는 프로젝트를 했었는데요. 테이블에만 앉아 있지 말고, 보고서만 보지 말고 통계 뒤에 사람을 보러 가자고 해서 서울에 있는 100명의 이제 시민들을 만나면서 인터뷰한 거거든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보고서가 담아내지 못하는 현장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어요. 정훈 님이 각종 인터뷰에서 그 내용을 많이 언급하셨어요. 그분의 시선이 보고서의 통계 그래프가 아니라 사람으로 이동했다고, 그 얘기를 밖에서 많이 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문제를 직접 보고 나니 이렇게 하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보람을 느꼈어요.
‘정치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결국 정치라고 하는 게 사람을 보고 하는 걸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정치인은 부패한 사람, 피곤한 사람이라고 뭉뚱그려져서 말해지지만 사실 분투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를 시작하려고 할 때의 초심은 진심이었다고 믿어요. 나쁜 마음으로 시작한 사람은 정말 적었을 것 같아요. 내가 이왕 맡게 됐으니 뭐라도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걸 일깨워줄 수 있는 게 사랑의 힘이라고 보거든요. 저는 사랑은 전염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정치인이 가지고 있었던 양심, 사랑을 계속 깨워주는 문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정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고 하셨지만, 지금은 내가 어떤 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정치에 대해서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정치는 최후의 순간에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봐요. 이게 제가 공공 영역에 계속 남아 있는 이유고요. 친구들이 ‘넌 왜 대기업을 안 가냐, 스펙 헛쌓았다’ 이런 말을 하는데요. 사실 민간 영역에서도 만들 수 있는 변화가 있어요. 그게 오히려 더 빠르고 영향력이 클 수도 있죠. 근데 그 영역에서는 최후의 순간에 이익을 생각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돈, 이익이 되는지를 생각하게 돼요. 하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최후의 순간에 사람을 생각해야 해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지킬 수 있지? 이 변화의 파도가 너무 빠른데 이 파도에 못 올라탄 사람들을 어떻게 데려가지? 이런 걸 생각하는 게 정치가 해야 될 일이고, 정치만 그걸 할 수 있다고 봐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고요.
저는 언제든지 정치를 할 생각이 있어요. 하지만 여의도 한복판에서 제가 경험하고 느낀 바로는, 정치 생태계에서 바뀌어야 할 점이 너무 많아요. 지금 너무 엉망진창이라서, 이걸 조금이라도 정리하는데 기여하고, 도전하고 싶어요. 정치 생태계, 문화를 바꿔나가는 일은 내부인일 때도 할 수 있겠지만, 외부인일 때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실험해 볼 수 있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사단법인 아그니카’ 라는 조직에 합류를 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이전에 하셨던 사회 활동이나 캠페인 기획과 정치가 하는 일이 좀 닮아 있다고 느끼신 걸까요?
맞아요. 옛날에는 국제기구가 숭고한 일, 권력 투쟁에서 벗어난 일을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곳에 가고 싶었어요. 이제는 ’정치가 권력 투쟁에만 매몰되지 않는다면 제가 속한 공동체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내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타협하는지만 명확하다면요. 국제기구에서 먼 나라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죠. 하지만 저는 제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의 변화를 이끄는 데 더욱 열의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정치로서 해낼 수 있는 일이고요. 그래서 커리어의 방향을 바꾸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