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저희 집 고양이입니다.
여느 경상도 지역이 그렇듯 거창도 보수가 우세합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수정당을 찍는 어르신들이 많고 줄곧 보수정당 국회의원이 당선됐죠. 저희 집안 분위기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명절마다 어른들이 정치 이야기를 시작하면 저는 조용히 밥만 먹다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곤 했어요.
애정클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그러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무슨 회사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치’ 들어가는 일을 한다니, 제 생각은 어떠냐고 어른들이 물어보기 시작한 것이죠. 저희 할아버지는 저에게 전화해 “MBC가 다 빨갱이라는데 사실이냐”고 여쭤보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하나 곤란하지만 동시에 기쁩니다. 제 의견을 궁금해하고 들어보려 하신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죠.
그렇게 일가친척 정치토크의 멤버로 받아들여진(?) 후로, ‘보수적인 어른들’을 바라보는 제 시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그분들이 생각하는 정치지형이 어떤 지식을 토대로 구현된 것인지, 가치관 형성의 배경이 된 개인적 경험은 무엇인지 듣게 된 것이죠.
가족을 제외한 제 인간관계는 솔직히 진보 편향적이기 때문에, 이전까진 보수정당 지지자와 교류할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일을 하게 되고 나서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샘플들을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이번 휴가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어요. 강경 보수인 줄 알았던 외삼촌이 알고보니 스윙보터였음을 알게 된 겁니다. 산불방지 활동에 대해 얘기하던 중 물꼬가 트였는데요. 산림 지역이 많은 지자체에서는 산불방지를 위한 인력을 따로 두고 대응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예산이 삭감돼 인력이 줄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외에도 농촌에 필요한 다양한 예산이 깎였다고 합니다. 외삼촌은 윤석열 정부의 농민 정책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며,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와 여당의 협치 거부까지 거론했어요.
들어보니 외삼촌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사안에 따라 평가를 달리하고 입장을 선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농민 정책과 지역사회 현안에 민감하며, 지역 정치인들의 평판도 꿰고 있었습니다. 몇십 년 간 지역 커뮤니티에 적극 참여하고, 농민으로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면밀히 살폈기에 갖춘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일상을 매우 정치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민주적 시민권을 행사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그 기반에는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보수는 맞는데, 잘 했으면 잘 했다고 하는 거고, 아니면 아니라고 하는 거지 보수 정답, 진보 정답이 따로 있겠어?”
‘완전 보수인 줄 알았다’는 저의 말에 외삼촌이 한 대답입니다. 제가 생각해온 ‘경상도 보수’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었어요. 그날의 대화 끝에 정말 많이 반성했습니다.
정치적 개인의 초상은 생각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더라고요. 늘상 다원주의, 공존, 존중이라는 단어를 거창하게 써내면서도 정작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제가 보이는 태도에는 여전히 편견과 몰이해가 담겨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외삼촌과 저의 의견은 같을 때보다 다를 때가 더 많겠죠. 하지만 이번 휴가에서의 깨달음 이후로 대화의 결은 많이 달라질 것 같아요. 외삼촌은 유독 가족에게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능했던 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