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공익변호사의 길을 택하게 되셨나요?
사법연수원에서 인권법학회와 신우회 동료들과 함께 가정폭력 상담소, 장애인권단체, 이주민이나 난민 지원 단체 등을 지원하는 기회를 얻었던 적이 있어요. 뉴스에서 보는 거랑 차원이 다르게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더라고요. 또 제 기질이 공익변호사와 잘 맞았어요. 공익변호사는 기존의 언어로 일하는 법률가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던 중 공익법재단 동천에 지원해 다양한 일을 하게 됐어요. 대형 로펌이다보니 장애인 인권, 북한 인권, 사회적 경제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며, 공익 전반에 대한 이해와 기본기를 배울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는데요. 그곳까지 오는 사건들은 거의 닳고 닳아서 온 것들이에요. ‘초반에만 잘 대처했어도 당사자가 이렇게까지 만신창이가 되지는 않았겠다’ 싶은 사건이 많이 보여서, 사건 초반에 대응하는 곳에서 일하면 어떨까 했죠.
마침 서울시에서 장애인인권센터를 개소해서 거기로 갔어요. 3년 일했는데요. 지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권 침해나 차별의 현장과 호흡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다만 제도 개선 활동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죠. 사건 지원을 하는 곳이니까요. 지리적인 제약도 있었어요. 다루는 이슈도 장애에 국한돼있었고요. 그래서 고민하다 장애인권법센터를 설립했어요.
수임료를 아예 받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사무실을 열었어요. 받는 사건도 있고 안 받는 사건도 있으면 제가 받는 사건만 열심히 할 것 같더라고요. 주변에서 후원이라도 받으라고 했는데, 고민하다 안 하기로 했어요. 변호사는 사업자인데 후원을 받는 게 웃기잖아요. 내가 자발적으로 안 버는 건데 왜 후원을 받나 싶어서요.
후원자들의 정신과 필요가 제 활동 범위에 투영돼야 하는데, 제가 그럴 깜냥이 못 되는 거 같아요. 사건의 경중을 떠나서 이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면 저는 하고 싶은데, 비전과 미션을 보고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예상 범위 밖에서 활동하는데 제약이 있을 수 있잖아요. 감사하게도 제가 강의도 하고 책도 쓰고 연구 용역도 하면서 어떻게든 활동비는 충당하고 있어요. 무슨 숭고한 원칙이 있어서 애써 지키고 이런 건 아니고요. 제가 나약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저를 보호하려고 하는 거예요.
좋은 면도 있어요. 어떤 이슈가 생겼을 때 메시지를 낼 수 있거든요. 제가 검수완박을 비판했을 때 싫어하는 후원자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걸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제가 장애인 학대 사건만 하는 줄 아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장애, 아동 문제가 한 부처의 일이 아니거든요. 거의 모든 정부 부처와 일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게) 좋죠. 저로선 가장 좋은 포지션이에요.
의뢰인들은 어떻게 만나게 되나요?
의뢰인를 지원하는 단체, 장애지원단체 같은 곳에서 많이 요청하죠. 일반적인 사건은 제가 맡지 않아도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있으면 연결해 드리지만, 웬만한 경우 열 수 없는 사건들이 있어요. 그런 사건들. 아무도 맡기 싫어하는 것들만 보내달라고 단체에 요청해요. 의뢰인의 장애가 중해서 어렵거나, 이 사람의 상황을 잘 이해해서 유대감을 진짜 잘 형성해야 겨우 열리는 사건들이 있거든요. 가령 최중증장애인 아동이 맞아서 죽은 사건 같은 경우 증거도 없잖아요. 그런 걸 해요. 내가 집중적으로 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만 하고 일반적인 사건은 보내지 말라고 해요.
기억에 남는 사건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제 책에도 쓴 내용인데요. 성인 여성이 성인 남성이랑 낮술을 먹다가 그 남자 집에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서, 그 남자의 친모가 집에 있는 상황에서 강간당하는 일은 상식적으로 일어나지 않잖아요. 이상해서 (피해자에게) 전화해 보니까 이분이 장애가 중해서 소통이 잘 안되는 거예요. 얘기해 봤더니 남편도 있대요. 그래서 케이크를 들고 찾아갔어요. 제 장점이 짧은 시간에 새로운 사람과 금방 친해지는 건데요. 처음엔 경계하다가도 맛있는 거 먹으면서 얘기하니까 또 친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사건 얘기를 들으니까 상황이 이해돼서, 그 건은 지원할 수 있게 됐어요.
근데 제가 오지랖을 부리거든요. 이분이 저랑 얘기하면서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 인기가 많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귀찮아 죽겠대요. 그런데 이런 작은 것들이 사인이거든요. 봤더니 다 성착취를 위한 오픈채팅방인 거예요. 그런 곳에 취약한 여성이 노출되면 연락이 엄청 오는데, ‘한 번 자면 얼마 줄게’ 이런 메시지로 꽉 차 있었어요.
그게 싫다고 해서 오픈채팅 차단 등의 조치를 해줬는데, 일반채팅으로도 그런 게 많이 오는 거예요. 아는 사람인 거잖아요. 알고 봤더니 그 동네 할아버지 여러 명이 이 여성을 성폭행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증거 채취를 하고, 고소 대리까지 해서 다 구속시켰죠. 그랬더니 그 동네가 발칵 뒤집혔어요. 거기서 끝내면 이분이 위험하잖아요. 그래서 동사무소, 복지관과 연락해서 이사시키는 지원까지 했어요. 사건을 거의 그런 식으로 풀어요, 활동가처럼.
변호만 해서 되는 게 아니네요. 피해자가 정말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관련 기관과 연계도 해야 하고, 구조적으로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게 많겠어요.
정부 부처는 자기가 보는 것만 봐요. 저는 신고부터 판결 확정까지 다 끌고 가잖아요. 제가 사회복지사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각 지역의 연결할 수 있는 체계를 다 연결해서 종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요. 그 체계가 전체 사회에서 하는 역할은 미미하더라도 어떤 사람에겐 극적인 삶의 변화를 만들어줄 수도 있거든요.
사건을 다루며 드러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싸우기도 해요. 아까 언급한 여성의 경우엔 수급비를 받고 있어서 취업이 사실상 무의미한 상황이었어요. 취업하면 그만큼 수급비를 깎거든요. 또 범죄 피해를 겪은 장애 여성을 위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없어요. 그런 문제를 관련 기관과 뚫어가기도 하고, 이렇게 연결되는 제도들이 많아서 한 사건을 가지고도 할 일이 무궁무진해요.
그런 심각한 사건들을 보다 보면 사회에 대해 절망하게 되진 않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어떤 사회든 범죄가 있잖아요. 그걸 어떻게 풀어가느냐의 문제로 접근해보면 범죄를 당한 뒤에도 그 사람 앞에 펼쳐진 일들이 있어요. 그걸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저는 그 과정을 함께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