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에서 정치인으로, 장혜영의 국회 4년
앞으로 국회에서 남은 한 달을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요?
21대 국회의 양심과 책임을 위한 10대 과제를 선정해서 입법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꼭 한 가지 힘주어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임신중지 보완입법인데요. 총선 다음날인 4월 11일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 불합치를 판결하고 국회에 보완 입법을 지시한 지 4년이 되는 날이었어요.
2020년 12월 31일까지 보완 입법을 하라고 했는데 하지 않았죠. 대한민국의 의료 체계와 보건 체계가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서비스를 제공할 지 규정이 필요한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요. 병원마다 천차만별이죠. 수술을 해 주는 병원인지도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수술 가능 기간과 가격도 다 달라서 한마디로 무법지대거든요. 임신 중지에 관련된 보안 입법은 반드시 21대 안에서 맺어야 해요.
지난 4년간의 입법활동을 돌아보면, 가장 뿌듯했던 일과 아쉬운 일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이 제일 어려워요. (웃음) 아쉬운 일이 뿌듯한 일보다 많았어요. 탈시설지원법을 통과시키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워요.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하고도 맞닿아 있는 내용인데, 의제가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그 의제를 이야기하는 주체 자체가 정치적 탄압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이 상황을 막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느껴요.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 싶은 정치는 3점 슛을 넣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탈시설지원법이 3점 슛이었죠. 국회의원을 오랫동안 준비한 정치인이 아니잖아요. 많은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국회의원이 됐죠. 삶에서 마주한 장애인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법과 제도를 발견했고, 그래서 정치를 한 번 해보기로 했어요. 정치 전체를 바라보는 식견이나 큰 흐름 속에서 역할을 찾기보다는 제가 알고 있는 영역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들어왔어요.
지금은 한 세트, 시즌을 이기지 않으면 3점 슛을 넣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요. 세트의 룰을 이해했다면, 진작 권력 그 자체에 도전하고 투쟁하는 일을 했다면 무언가 달랐을까…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커요.
(21대 국회 활동은) 제가 바라보는 정치적인 세계가 의제에서 정치 그 자체로 확장되는 시간이었어요. 지금의 정치 환경에선 논리와 근거와 진정성이 의제를 관철하는 힘이 되지 못한다는 걸 느꼈어요. 어떻게 하면 정치 세력으로서 시민들에게 인정받을지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죠.
‘대중 정치인’이라는 속성을 갖춰야 한다는 말씀 같은데요. ‘장혜영’ 하면 특정 의제와 소수자에게만 먹힌다는 이미지가 있죠. 확장을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장혜영이 포기할 수 없는 가치와 연결할 수 있을까요?
제가 받는 가장 큰 오해가 ‘소수자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는 거예요. 물론 구체적인 소수자 운동이나 단체와 연대해 온 사안이 많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취약함이라는 주제는 정말 보편적이에요. 우리 사회가 무너지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 24일이 탈시설 장애인연대 2주년이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은 2만 8천 명 정도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시민이 마음속에 시설을 가지고 살아요. 지금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늙고 병들고 연약해지면 마음속으로 시설로 들어갈 준비를 하죠.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구든 적절하게 도움을 받으면 자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탈시설 장애인연대가 우리 사회에 가르쳐주고 도와주면 좋겠다, 우리 사회도 자립하기 위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기념식에서 말씀드렸는데요.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에 경쟁 사회를 구축했고 그걸 통해서 경제적으로 발전했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 참혹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어요. 어떻게 취약한 존재로 오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해요. 장애인, 노인, 성소수자는 그 고민을 먼저 한 사람들이에요. 저는 이 지혜가 보편화되기 위한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추구해 온 가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겨내는 과정이 우리 사회가 이 가치를 소화해 내는 과정과 연결된다는 강한 확신이 있어요.
첫 지역구 출마였습니다. 지역구 활동에서 말씀하신 확장 전략의 프로토타입을 시험해 보셨나요?
가장 염두에 두었던 건 사람들에게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어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금의 마포 정치에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경청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거든요. 일단 만나주지를 않고, 물어봐도 답이 없고, 서울시나 정청래 의원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지역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았어요. 적어도 이 사람은 주민을 존중하는 정치인이라고 신뢰를 쌓아나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상암동에 계시는 분들이 일산에 대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요. 과거에 개발에 대한 약속이 있었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길게 보면 난지도 때부터 공공과의 악연이 깊은 거예요. 그래서 공공, 상생 이런 단어가 싫은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인터뷰를 하면 그런 단어를 쓰잖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지역 맘카페에서 저희 사무실을 찾아오셔서 주민들이 그런 말은 싫어한다고 조언해주신 거예요.
사람들이 진보정당에 대해서 갖는 편견이 있잖아요. 어떤 사안에 대해서 분명히 이런 입장일 거라고요. 저도 지역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거죠.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소각장 문제도 처음에는 님비라고 생각하고 접근했지만, 들어보니까 순환 경제와 이어갈 수 있는 문제였죠. 이제는 아파트 동별로 주민 간담회를 하면 주민 입에서 생산자 규제 얘기가 나오거든요. 지역에서 변화의 잠재력을 많이 느꼈어요. |